보안세상
광해(Masquerade, 2012) 본문
조선 제 15대 왕 광해군.
선조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함으로 이름이 높앗습니다.
조정 내 모든 신하들은 가장 총명한 광해군이 세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신성군이란 왕자를 제일 총애하였으며 그를 세자로 세우고 싶어하였습니다.
광해군이 왕이 될 확률은 적엇지만 한 사건이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임진년 4월 침공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서울, 평양까지 밀고 올라오고 선조는 급히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지만, 이는 광해군에게는 오히려 시련이었습니다.
아버지 서조가 자신을 세자로 임명한 거은 곧 자신보고 분조(나뉜조정)을 이끌고 왜군이 우글거리는 사지로 들어가서 임시 조정 역할을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궁에서 나고 자란 18세의 광해군은 불만없이 이 임무를 수행합니다.
처음에는 함경도로 가서 임시 조정을 차리려 하였지만, 함경도는 이미 가토에게 떨어진 상황.
모든 신하들은 왕을 따라 우리도 요동으로 도망치자 했지만, 광해군은 여기서 폭탄발언을 던집니다.
"분조는, 남쪽으로 향한다!"
왜군이 우글거리는 점령지로 들어가겟다는 이 발언에 조정 신료들은 경악하나 광해군은 단호하엿습니다. 그리고 광해군은 범의 아가리로 직접 들어가 의병을 궐기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흩어진 관군을 모으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다독였습니다.
광해군의 명성은 조선 천지에 드높아졋고, 선조는 이때부터 광해군을 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적진 한가운데를 들어가 실질적 조정 역할을 해낸 광해군! 도망다니기에 바쁘고 요동으로 갈려고까지 한 자신과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에 열등감을 느긴 선조는 왜란이 끝난 후 영창대군으로 세자를 교체하려 합니다.
간신 유영경이 이에 동조하여 자신의 지지세력을 긁어모아 영창대군을 지지하였고, 영의정마저 다른 마음을 품는 이 상황, 광해군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갔습니다.
이 때 광해군을 도운 것이 정인홍과 이이첨, 이 두 사람은 광해군 지지 상소를 올려서 귀양을 가나 마침 선조가 죽고 광해군은 조선 제 15대 왕으로 즉위합니다.
<내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33세. 세자가 된 지 16년째.>
즉위한 광해군이 제일 처음 실시한 것은 '탕평책'이었습니다.
대북이 그의 즉위에 막대한 공헌을 하여 가만 있으면 대북파가 너무 득세할 것을 안 그는 소북파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원익, 이덕형, 이항복과 같은 원로대신을 3정승에 포진시켜 나라를 이끌어 가려고 하였습니다.
영조보다 무려 이백년을 앞서 실시된 탕평! 최고의 실무관료 3인이 정승자리를 맡고 소북과 대북이 서로 경게하며, 서인과 남인은 왕의 권력에 의존하는 연립정국은 사실상 이상적인 조정이었습니다.
이런 이상적인 조정을 만들어낸 광해군은 곧바로 개혁정책을 실시합니다.
바로 대동법.
대동법은 말 그대로 혁신적인 법이었고 광해군은 이를 경기도에 시범시행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이전에 들려오는 사대부들의 불평불만!
자신의 처남인 유희분마저 이런 부정부패에 관여되엇다는 것을 알고 광해군은 생각합니다.
"사대부들과 함께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연립정국 속에서도 대동법에 대한 반대가 빗발치는 것을 본 광해군은 사대부들을 혐오하게 됩니다. 몇몇 깨인 사대부들도 물론 존재하였고, 이들은 한 술 더 떠 대동법을 8도에 시행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대동법은 좋은 법이나 완벽하지는 않은 초기 시행되는 법.
경기도라는 한 개의 도에 실시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전국에 시행될 경우 반드시 문제점이 있을 것이고 만일 조금이라도 대동법이 실패한다면 그 대는 대동법을 페지하자는 사대부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될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실제로 인조 대, 성급하게 대동법을 삼도에 확대실시하다가 그 결과는 2년만에 대실패로 귀결됩니다)
광해군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경기도에 대동법을 오랫동안 실시해 법을 완벽하게 다듬고, 법이 완벽해지면 그 때 전국에 시행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대부들 속에서는 8도에 대동법을 확대실시하는 논의 자체가 불발될 것은 뻔한 일. 광해군은 그래서 '절대군주'를 꿈꿉니다.
<짐은 조선의 왕이지 사대부들의 왕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수많은 옥사를 벌여 사대부들 세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 족쳐 공포분위기를 사대부들 사이에 조성하며, 궁궐을 지어 그의 왕권을 과시하였습니다.
물론 광해군이 궁궐을 지은 진짜 이유는 왕권 과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황기와, 청기와로 궁궐을 덮으려 했는데 이는 황제만이 덮을 수 있엇던 것. 또한 원구단을 지어 제사를 하늘에 지내려 햇는데 이 또한 황제만 할 수 있었던 것. 광해군은 명나라가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조선을 제후국이 아니라 한 개의 당당한 자주국이라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궁궐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여튼 그가 옥사를 벌여서 왕권을 강화시킬수록 옥사를 주도하는 이이첨의 세력이 강해질 것은 뻔한 일. 그래서 그는 이이첨을 견제하고, 또 절대군주가 되었을 대에 개혁정책을 실시하는 동반자로 삼고자 급진개혁파 허균을 끌어들입니다.
<조선의 개혁은 최대한 빨리...기다릴 시간 없다.>
허균은 알다시피 매우 진취적인 개혁자. 광해군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를 측근으로 삼어 점점 세도를 넓히는 이이첨을 견제하고 나중에 그를 대북파의 새 영수로 만들어 개혁정책을 그와 함께 이끌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질급한 허균은 결국 제 성격 못 참고 좀 더 빨리 개혁을 실시하고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잡혀 능지처참 당합니다. 유일한 경쟁자가 사라진 이이첨은 전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는 '슈퍼신하'에 등극하나, 광해군은 아직 '절대군주'와 '개혁정책'을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후금과의 외교에서 그는 비변사 신료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거의 혼자서 중립외교를 실시하고, 결국 대성공을 거둡니다. 중립외교를 실시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그는 더 나아가 이이첨을 다시 견제하기 위해서 서인세력을 끌어들이고 다른 대북파 관료에게 힘을 실어주엇고,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한 번 좌절도 격었지만, 이대로 게속 진행해 간다면 몇 년 후엔 꿈꾸던 절대군주가 되어 개혁정책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엇던 그 때,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그와 함께 광해군이 구상했던 절대왕정, 개혁정책, 중립외교 모두가 깨어집니다.
이로써 사대부들과 광해군의 전투는 광해군의 패배로 끝나고 맙니다.
이후 그는 반정세력들에 의해 왜곡되고, 폄하되었으며 '폐주'라는 칭호까지 얻습니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바로도는법. 현재 광해군의 평가는 매우 높습니다.
이런 영화에서나마 광해군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 아니겠습니까.
그도 자신에 대한 달라진 평가에 지하에서 웃고 있기를 기대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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